포클랜드 제도

 



'''포클랜드 제도'''
'''Falkland Islands'''
[image]
[image]
'''국기'''
'''국장'''
'''Desire the Right
옳은 것을 갈망하라'''
'''국가'''
God Save the Queen
Song of the Falklands (비공식)
'''수도'''
스탠리(Stanley)
'''면적'''
12,173㎢
'''인문환경'''
'''국가'''
영국 [image]
'''공용어'''
영어
'''인구'''
3,398명(2016)
'''인구밀도'''
0.28명/㎢
'''민족구성'''
영국인 98%, 아르헨티나인 1%,[1] 그외. 외국인 1%
''' 정치'''
'''정치체제'''
입헌군주제 국가 산하의 해외영토, 의원내각제, 단원제
'''국가원수'''
엘리자베스 2세 영국 국왕
'''총독'''
나이젤 필립스(Nigel Phillips)
'''총리
(Chief executive)
'''
배리 롤랜드(Barry Rowland)
'''경제'''
'''GDP'''
$1억 9328만(2017)
'''1인당 GDP'''
$70,800(2015)
'''GDP(PPP)'''
$2억 2850만(2011)
'''1인당 GDP(PPP)'''
$96,982(2011)
'''화폐'''
포클랜드 파운드[2]
'''ISO 3166-1'''
FK
'''도메인'''
.fk
'''시간대'''
UTC-3(포클랜드 제도 시간대)
'''위치'''
1. 개요
2. 역사
3. 지리
4. 인구
5. 경제
6. 영유권 분쟁
7. 기타
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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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아메리카 대륙 동남쪽 남대서양에 위치한 영국아르헨티나의 영토 분쟁 지역. 실효 지배 중인 영국에서는 해외 영토(Overseas Territory)[3]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현재 2017년 9월 부임한 나이젤 필립스 총독이 통치하고 있다.
이 단어의 발음은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따르면 /ˈfɔːlklənd/ 혹은 /ˈfɒlklənd/로 발음하고 단모음의 ɔ발음이 난다.[4] 다만 단모음 ɔ나 ɒ뒤의 l은 발음상 거의 사라지는 추세다. ɔ를 '아'에 가깝게 읽는 미국식으로는 '파클랜드'에 가깝게 발음하지만 영국인들은 '포클랜드'에 가깝게 읽는다. 그리고 Islands(제도)라는 단어를 안 쓸 거면 복수형인 Falkland'''s'''로 쓰고 발음도 포클런즈처럼 된다.[5]
아르헨티나에서는 말비나스 제도(Islas Malvinas)라 한다. 아르헨티나의 최남단인 티에라델푸에고 섬과의 거리는 약 410여km지만 영국과의 거리는 무려 12,173km.
한때는 사우스조지아 사우스샌드위치 제도도 포클랜드 제도와 한 단위로 묶여 관리되었으나 1985년에 별도의 속령으로 분리되었다.

2. 역사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먼저 발견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데 당시 남미 동부 지역은 원주민 사회였던 만큼 신뢰할 만한 기록이 없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페르디난드 마젤란의 세계 일주 탐험대가 최초로 발견, 상륙했다고 보고 있고 영국도 존 데이비스가 최초로 발견했다고 보고 있지만 신뢰할 만한 기록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최초로 섬을 조사한 내용으로는 네덜란드의 세발트 데 베르트(Sebald de Weert)가 1600년에 조사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상륙하지는 않았다.
최초의 상륙자는 17세기 영국 탐험대인데 이것은 기록이 있다. 바로 이들에 의해 현재의 포클랜드 제도라는 지명이 붙었다.[6] 그러나 잠깐 상륙하고 돌아간 것을 영유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영유권을 주장할 만한 최초의 사건은 프랑스인들이 1764년 동 포클랜드 섬에 정착하여 루이 요새를 세운 것이다. 1766년 영국이 손더스 섬에 기지를 세웠다. 이때 양측이 서로의 존재를 인지했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아르헨티나가 주장하는 명칭인 '말비나스' (Malvinas)는 이 프랑스인들의 정착에서 비롯한다. 포클랜드에 정착한 프랑스인들은 프랑스 생 말로 출신이어서 이를 뜻하는 말루인 섬(Ile Malouines)으로 이름을 붙였는데, 이를 스페인어로 번역한 이름이 '말비나스'이다.
그러나 프랑스는 1766년 포클랜드 제도가 쓸모가 없다고 판단하고 스페인에게 영유권을 팔았다. 4년 뒤 앞서 세운 영국의 기지를 발견한 스페인인이 침공해서 점령했으나 다음해 영국에 반환했다. 그러나 영국은 영유권을 표시하는 명판을 남겨둔 채 다시 철수했다. 그 후 스페인 정부 당국은 죄수 캠프로 쓰다가 역시 중도에 철수해서 무인도가 되었다.
한편 유럽에 나폴레옹 전쟁이 일어난 동안 모국의 혼란을 틈타 1816년 아르헨티나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다. 아르헨티나는 이 영토도 같이 승계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때 당시 포클랜드 제도에는 유럽인들이 모두 철수해 무인도가 된 지 40년이 지난 뒤였다. 4년 뒤 아르헨티나는 이 지역이 자신의 영토라고 선포하고 미국인 사략선장을 파견했는데 여전히 무인도로 남겨두었다. 1823년 아르헨티나가 독일인 상인을 보내 기지를 설치했지만 그의 불법적인 어선 나포와 해적 행위에 분노한 미국 정부가 함선을 보내 파괴했다. 그러자 포클랜드 제도에서의 해적 행위에 대한 소식을 들은 영국이 함선을 보내 섬을 점령했다.
이후 영국의 통치를 받았고 영국은 다수의 이주민을 보내어 정착시키고 자국 영토로 삼았다. 고래와 바다표범을 잡거나 목축업 등을 했고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태평양에서 쫓겨온 독일 해군 아시아 분함대가 이 주변을 지나다가 영국 해군에게 발각당해 전멸당하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포클랜드 해전.[7]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 열강 국가들이 식민지를 유지할 능력이 없어지고 탈 식민지화 추세가 나타나자 아르헨티나는 약 1세기만에 포클랜드 제도의 영유권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미 포클랜드 제도의 현지 주민들은 대부분 영국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었기에 아르헨티나로의 귀속에 반대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2013년에 포클랜드 제도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치뤄진 주민 투표에서 포클랜드 제도 주민들 대다수가 영국령 잔류를 선택했다.[8]
이러한 배경으로 양국 간에는 여러 차례 협상이 있었으나 모두 결렬되었고 크고 작은 이유와 정치적 목적으로 결국 1982년 아르헨티나에 의해 포클랜드 전쟁이 일어났다. 영국은 전쟁을 예상치 못해 포클랜드 제도에 군 병력을 거의 주둔시키지 않아 해병대 100여명이 전부였지만 곧 모든 군사력을 동원해 치열한 전투 끝에 결국 포클랜드 제도를 탈환했다.

3. 지리


제도는 크게 서포클랜드 섬(West Falkland)과 동포클랜드 섬(East Falkand)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부분의 지역이 구릉지이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서포클랜드와 동포클랜드 두 섬으로 나뉘어져 있고 기타 작은 섬 상당수들이 주변에 흩어져 있다.
남극권과 가까운 남위 50도선 상에 위치해 서늘하고 황량한 기후를 보인다. 대충 아이슬란드와 비슷한 기후.

4. 인구


제도는 1만 평방km2를 넘지만[9] 지리조건과 기후조건이 열악해 거주 인구는 3천 명 남짓에 불과하다. 그 중 대부분이 수도인 스탠리에 모여 살고 있다. 양 200마리당 사람 한 명이 있다.

5. 경제


섬의 주요 산업은 목축업과 어업이다. 이 곳에서 60만 마리의 을 키우며, 어업 역시 활발했으나 남획으로 인해 지금은 주춤해진 상태. 1차 산업이 포클랜드 제도 GDP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 외에도 주변을 지나는 선박에 대한 재보급도 나름대로 이 제도에서는 큰 산업이라고 한다.
한편 2012년 2월 경 포클랜드 인근 해상에서 잠재적 가치가 무려 18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유전이 발견되었다. 영국은 포클랜드 제도 주변 해역의 대륙붕에서 해저 유전의 존재 가능성을 포착하고 탐사 작업을 한창 진행하고 있다.

6. 영유권 분쟁


지금도 영국과 아르헨티나는 포클랜드 제도가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포클랜드 전쟁 패배를 경험삼아 아르헨티나와 영국 간 군사력 열세를 인정하고 있어 지금은 평화적, 외교적 방식을 통한 영유권 문제 해결을 추진하고 있다.
더군다나 요즘에는 영국에 의해 포클랜드 제도를 중심으로 주변 해역의 대륙붕에서 해저 유전의 탐사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아르헨티나로서는 만약 포클랜드 제도 일대 해역에 석유가 나오면 손해를 보게 되니 어떻게든 돌려받고자 하고 있고 계속 반환 협상을 요구 중이나 영국은 주민들의 절대다수(99% 이상)가 영국령 잔류를 희망한다는 이유로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 2013년 3월 실시된 주민 투표에서는 도민의 99.8%(1518표 중 1513표. 참고로 반대 3표, 무효 2표.)가 영국 잔류를 지지했다. 아르헨티나는 포클랜드 주민들이 원주민이 아니라 이주민이기 때문에 자기 결정권이 없다고 보고 강제 퇴거 조치한 뒤 아르헨티나 국민들을 이주시키려 하고 있다.
UN 산하 탈식민지화 위원회(24 위원회)[10]에서는 이 제도가 아르헨티나 땅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이에 맞서 영국은 특정 지역에 오래 머물면 자국의 땅으로 인정한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워 부정하고 있다.
현재 포클랜드 영유권 분쟁에서 영국의 포클랜드 영유권을 지지하거나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영유권을 지지하거나 양국간 분쟁에서 중립을 표방하고 있는 국가들은 다음과 같다.
아일랜드와 프랑스 두 국가 모두 역사적, 정치적으로 영국과 대립 관계에 있으면서도 아르헨티나와 영국의 포클랜드 제도 영유권 분쟁에서 영국의 영유권 주장을 지지하고 있다. 프랑스는 해외 영토를 많이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포클랜드 전쟁 전에 아르헨티나에 엑조세 미사일 등의 무기를 판매했기에 지금도 영국인들 사이에서는 포클랜드 전쟁 이야기만 나오면 비판의 대상이 된다. 다만 엑조세 미사일 자체가 영국에서도 운용하고 다른 여러 국가에서도 운용하던 무기고 프랑스는 전쟁 전에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갈등은 있을지언정 아르헨티나가 선제 공격을 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포클랜드 전쟁 중에는 아르헨티나에 무기를 인도하지 않았다.
비록 거절당하기는 했지만 포클랜드 전쟁 당시 포클랜드에 뉴질랜드 해군 함정을 보내 영국을 돕겠다고 제안했다.
공식적으로 영국의 영유권 주장을 지지하고 있으나 남미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 악화를 피하고자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의 분쟁에서 중립을 취하거나 서로 자제를 촉구하는 일도 있다.
한국의 경우 포클랜드가 영국령으로 귀속되는 국제법적 논거들을 지지하고 있는데 이것은 독도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다. 동해/일본해 표기와 관련해 영국이 일본 쪽에 손을 들자 한국 측에서 아르헨티나를 지지하는 것으로 응수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아르헨티나 측이 주장하는 말비나스해 단독 표기가 아니라 양쪽에서 부르는 명칭을 둘 다 병행 표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아르헨티나를 지지한다고 보기는 어렵고 바다 명칭 문제와 섬 영유권 문제는 둘 다 심각한 문제이지만 엄연히 다른 문제다. 한국도 포클랜드와 비슷하게 독도 영유권 문제가 걸려있고 국제 외교나 무역에서 영국과 영연방의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후 논평 자체를 피하고 있다. 한국전쟁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보내준 국가가 영국이라서 명분으로도 영국 쪽으로 기울어 있는 입장이다.
  • 이스라엘
  • 아르헨티나 지지 : 페루, 브라질, 우루과이, 칠레, 과테말라, 니카라과, 에콰도르 등 중남미 국가들과 중국은 아르헨티나를 지지하고 있는 중이다. 다만 이 국가들도 적극적으로 지지 의사를 표명한 경우는 많지 않고 대개는 논평 정도만 한 상태.
  • 페루
사실 페루는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이 영국의 승리로 굳어져갈 무렵 중재를 시도하다가 늦게나마 아르헨티나를 지지한 적이 있었다. 남미에서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제도 영유권 주장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옹호하는 국가기도 하다.
옆나라 페루만큼은 아니지만 포클랜드 문제에서 아르헨티나의 영유권 주장을 외교적으로 옹호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영국의 포클랜드 제도 영유권 갈등에서 아르헨티나의 입장을 편드는 것 뿐만 아니라 포클랜드 제도로 가는 영국 국적 선박과 항공기의 입항 및 공항 착륙을 일체 불허하는 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아르헨티나와 앙숙 관계지만 포클랜드 문제에서 아르헨티나를 지지한다.
2012년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포클랜드 제도의 소유권은 아르헨티나에 있다면서 영국을 비난하기까지 했다. 사실 볼리비아 역시 태평양 전쟁에서 과거 볼리비아령이었다가 칠레 땅이 된 안토파가스타 주 등 칠레 북부 태평양 해안 지대에 대한 영유권 반환을 주장하면서[11] 칠레와 영토 문제로 대립하고 있다. 다만 남미 국가들이 아르헨티나의 주장을 지지하는 포클랜드와 달리 안토파가스타는 남미 국가들도 볼리비아의 주장을 지지하지 않고 있다.
우고 차베스가 살아있었을 때는 영국을 비난하면서 아르헨티나를 적극 지지했으나 차베스가 죽고 베네수엘라 경제가 파탄난 이후에는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 포클랜드 영유권 갈등에 신경쓰지 못하고 있다.
1970~80년대까지는 영국의 영유권 주장을 지지했고 특히나 포클랜드 전쟁 당시 영국에게 자국 영공을 개방해 아르헨티나가 패하게 만들기까지 했으나 1990년대 이후 아르헨티나 지지로 돌아섰다. 재밌는게 칠레는 한때 포클랜드를 선점하려고 포클랜드의 소유권을 주장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리상으로 바다라곤 태평양 연안지대 밖에 없던 칠레 본토와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포클랜드 제도와의 거리가 워낙 멀어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다.
반미, 반서방 성향의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이 집권하고 있는 국가다.
과테말라는 1981년 벨리즈가 영국에서 독립하기 전 벨리즈가 과거 마야 문명과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과테말라 고유 영토였다고 주장하면서 1960, 70년대 당시 마치 아르헨티나와 영국의 포클랜드 제도 영유권 분쟁과 유사하게 벨리즈를 두고 영국과 대립한 이력이 있었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아르헨티나 지지를 표명했다. 중국이 아르헨티나를 지지하는 이유는 중국이 전략적으로 필요로 하는 남미의 석유, 철광석, 콩 등의 식량 수출 시장을 남미가 제공할 수 있고 전통적으로 반미 성향이 짙은 남미는 중국에게 외교적으로도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가 있기에 아르헨티나와 비슷한 입장이기도 하다.
공식 입장은 중립이나 포클랜드 전쟁 당시 미국 중앙 정보국의 부정적인 입장을 뒤엎고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와 미군이 영국을 지원했고 21세기에도 영국과 동맹 관계다.
구 소련 시절이었던 포클랜드 전쟁 당시 입장을 표명하면서 영국을 비난하기는 했지만 당시 아르헨티나도 반공 국가였던 만큼 실제로 적극적으로 아르헨티나를 돕지는 않았다. 당시의 UN 투표에서는 기권. 그런데 전쟁 당시 아르헨티나에게 정보를 제공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2015년 3월 영국 주재 러시아의 대사가 영국의 포클랜드 지배권에 이의를 제기했다. 포클랜드와 크림 반도에 이중 잣대를 적용한다는 게 이의를 제기한 이유다. 한편 2015년 4월 23일 블라디미르 푸틴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아르헨티나 당시 대통령과 정상 회담을 하고 양국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끌어올리기로 합의했다. 푸틴은 러시아는 말비나스 섬과 관련한 분쟁을 조속히 해결하기 위해 영국과 양자 협상을 추진하려는 아르헨티나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는 앞서 2015년 1월 2일 러시아로부터 12대의 Su-24 전폭기를 임차하기로 합의했다.
적극적으로 지지하지는 않고 지브롤터 때문에 암묵적으로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영유권 주장을 지지하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스페인이 대놓고 아르헨티나를 지지하면 세우타, 멜리야모로코에 돌려줘야 하는 꼴이 되어서 스페인도 곤란해지는 면이 있기도 하고 공식적으로 입장을 표명한 적은 없다.
UN 산하의 탈식민지 위원회에서는 아르헨티나의 영토로 판정했다. 하지만 국제 정세에서 영국의 입김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판정만 해뒀을 뿐 어느 국가의 영토라고 확고한 주장은 하지 않고 있다. 반면 UN 산하 국제 사법 재판소는 포클랜드와 관련된 세 차례의 기소와 관련해 국제법적으로 영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쪽이다.
스페인의 입장을 생각하는 것과 같다.
포클랜드 전쟁 당시에 미국, 영국, 유럽 등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에 대한 무역 중단은 끝까지 실시하지 않았지만 UN에서 아르헨티나군의 포클랜드 철수 권고안에 찬성표를 던지는 등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영국 편에 섰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현재 일본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나 독도 문제 같은 섬과 해양 영유권 문제가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지는 않다.
2016년 3월 29일 UN 대륙붕 한계 위원회에서 포클랜드 제도 주변 해역의 아르헨티나 영유를 인정했다. 정확히 말하면 포클랜드 섬이 아르헨티나의 영토라는 것이 아니라 포클랜드 주변 '대륙붕 한계'[12] 책정에 있어서 아르헨티나의 손을 들어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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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서 보이는 옅은 분홍색 지역이 아르헨티나와 영국 간 분쟁 지역으로 대륙붕 한계 위원회는 이곳이 아르헨티나의 대륙붕에 해당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 판단대로라면 아르헨티나의 대륙붕 한계가 35%가량 늘어나게 된다. 다만 대륙붕 한계 위원회의 판단은 대륙붕에 관해서조차 분쟁 지역에 대해서는 판결을 내릴 권한이 없고(본 사안에서도 대륙붕 한계 위원회는 해당 지역이 분쟁 지역임을 명시했으므로 이 판단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 어디까지나 과학적, 지형적으로 이렇다고 판단할 뿐이다.
이 판단을 근거로 포클랜드 제도는 과학적, 지형적으로 아르헨티나의 대륙붕에 속한다고 아르헨티나가 주장할 수 있기는 하지만 국제법적으로는 큰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영토 분쟁이란 땅이 어디에서 이어지느냐라는 대륙붕 문제 말고도 다른 수많은 논점과 논쟁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ICJ와 같은 국제법 기구들, 영연방 국가들, 유럽 국가들이 영국의 포클랜드 영유권을 지지하는데 있어 대륙붕 문제는 관심 사항도 아니었다.
앞으로 아르헨티나 대륙붕에 속한 포클랜드 해양 자원 이용에서 영국이 불리한 입장이 되기는 했으나 그와는 별도로 포클랜드에 속하는 영해와 EEZ는 영국이 국제법적으로 별도로 인정받아 이용할 수 있다.
더군다나 요즘에는 영국에 의해 포클랜드 제도를 중심으로 주변 해역의 대륙붕에서 해저 유전의 탐사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아르헨티나로서는 만약 포클랜드 제도 일대 해역에 석유가 나오면 손해를 보게 되니 어떻게든 돌려받고자 하고 있고 계속 반환 협상을 요구 중이나 영국은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

7. 기타


비글호에서 항해를 한 찰스 다윈에 의하면 남아메리카로부터 워낙 멀리 떨어져있다 보니 포클랜드에는 박쥐 등의 소형 포유류조차 없었고 섬의 유일한 육상 포유 동물은 포클랜드 늑대(일명 남극 늑대)라는 고유종이었다. 하지만 이 동물은 이름은 '늑대'라고는 붙었지만 분류학적으로 완전히 별개의 속에 속하고 습성은 여우에 더 가까웠다. 섬의 최상위 포식자였고 단독 생활을 하면서 새의 알이나 펭귄, 바다표범의 새끼 등을 잡아먹었다. 성격이 매우 양순하고 인간에게 적대적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점 때문에 모피용으로 대량으로 살육당했다. 이후 포클랜드 섬으로 건너간 영국인들에 의해 포클랜드에서 목양업이 시작되면서 양을 습격한다는 이유로 목동들에게 남획당해 1876년 완전히 멸종되었다. 모리셔스도도, 북아메리카여행비둘기 등과 더불어 인간의 남획으로 생태계가 파괴된 경우다.
포클랜드 제도에서 묻힌 지뢰가 38년만에 전부 제거됐다.#

8. 관련 문서



[1] 총 38명. 2013년 5월 기준.[2] 파운드 스털링과 1:1로 환율이 고정되어 있다. 포클랜드 제도에서는 파운드 스털링도 쓸 수 있지만 영국 본토에서는 포클랜드 제도 파운드를 쓸 수 없고 파운드 스털링으로 환전해야 한다.[3] 1980년대 이전까지는 Crown Colony(왕령 식민지), 1980년대~2000년대 초에는 Dependent Territory(속령)이라고 했다가 2000년대에 현재의 해외 영토라는 용어를 도입했다.[4] 미국에서 일반인 대상으로 편찬되는 사전에서는 국제음성기호를 안 쓰고 독자적인 기호를 써서 ô로 표기하는 게 일반적이다.[5] 영어에서 '제도'라는 말을 뺄 때 '제도' 앞의 단어를 복수형으로 바꿀지 말지는 지명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포클랜드는 Islands를 안 쓸 거면 Falklands로 복수형으로 써야 하지만 영국 본국에 속하는 스코틀랜드셰틀랜드 제도(Shetland Islands)는 Islands를 뺄 경우에도 그냥 Shetland로 쓴다. 그러니 지명마다 일일이 확인해 봐야 한다.[6] 포클랜드는 당시 영국 해군 제독 중 한 명이다.[7] 정확히는 독일의 세력권이던 산동성 청도에 배치된 독일 함대(장갑순양함 2척, 경순양함 5척)가 영국과 동맹이던 일본 해군(순양전함 공고까지 보유한)을 피해 본국으로 귀환하기 위해 영국의 세력권이 줄지어 있던 서쪽(말레이반도-인도-수에즈운하/남아프리카)을 피해 태평양 동쪽으로 항해하다 페루 앞바다에서 영국 함대를 격파하고 중립국인 페루 항구에 입항해 잠시 휴식한 뒤 남미 최남단을 돌아 남대서양에 진입했으나 포클랜드 제도에 구식전함 1척만 있는줄 알고 공격했다가 페루 앞바다 해전의 패배에 열받은 영국이 급히 파견한 인빈시블급 순양전함 2척이 와 있었기에 박살났다.[8] 이는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제도 영유권 분쟁 뿐만 아니라 칠레볼리비아의 해안 영토 분쟁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볼리비아가 태평양 전쟁으로 칠레한테 뜯긴 안토파가스타 등 과거 볼리비아 땅이었던 태평양 연안 지역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할 때면 칠레도 '안토파가스타내 지역 주민들이 볼리비아로의 귀속을 반대, 칠레령 잔류를 원함'으로 대응하고 있다.[9] 현존하는 영국의 속령 중에서 가장 크다.[10] 다만 이 산하 기관에 가입한 국가 수가 너무 적고 유럽쪽 국가는 아예 없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고작 17개국인데 주요국은 중국, 러시아, 인도, 이란, 인도네시아, 쿠바 정도다. 말 그대로 반서방 국가들과 제3세계 국가들의 친목 모임에 더 가깝다.[11] 이 지역을 칠레와의 전쟁에서 상실하면서 스페인 식민지에서 독립했을 초기에 해안국이었던 볼리비아가 바다 없는 내륙 국가가 되었다.[12] 배타적 경제수역과 비슷하나 EEZ가 200해리인 반면 대륙붕 한계 설정은 최대 350해리까지 가능하고 광물과 비생물 자원, 정착성 어류 등을 해당 국가가 독점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다만 회유성 어류도 독점적 어업이 가능한 EEZ와는 달리 대륙붕으로는 어업에 있어서는 독점적 이용을 할 수 없다.